다른 직종의 불합리한 노동처우, 고객이나 회사의 갑질.
이런 이야기가 화제가 되면 다들 자기 일이 아닌데도 마치 제 일처럼 공감하고, 분노해주고, 행동한다.
그런데 유독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아무리 힘들다고 호소해도 그게 당연하게만 여겨지더라.
- 그런 것도 참기 힘들면 그 직업을 선택하지 말았어야지.
- 그런 진상들 받아주는 것도 네 일이잖아.
- 하루이틀이냐? 나도 힘들어.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디있어.
지금 일하고있는 회사 말고도, 이 업계에서 10년을 종사했지만 제일 많이 들은 말들이 이거였다.
나는 그냥 대학에서 교양으로 커피 강의를 들었다가 수업 내용이 재밌어서 흥미가 생겼고, 나도 커피 마시는 걸 좋아했고, 실제로 만들어보니 그게 더 더 재밌어서 이 일을 선택했을 뿐이었다.
세상에 자기가 선택한 직업이 어떤 것들을 감수해야하는지 미리 다 파악한채로 시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처럼 그냥 일이 재밌어서, 의외로 적성에 맞아서. 혹은 그냥 전공맞춰서. 어쩌다보니. 그렇게 선택한 사람이 더 많을 텐데.
아니면 이제 와서 발을 빼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렸거나, 이제 와서 다른 일을 구하기에는 현실이 녹록지 않아서 머물러있는 사람도 분명 있을거다.
그런데 사람들은 유독 서비스업의 고됨에만 공감하지 못하고 돌을 던지더라......
싫으면 그만두란다. 너무 쉽게 말한다. 서비스업이 대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있으니 그만 두는 것도 쉬울거라 생각한다. 이게 내 생업인데.
생면부지 남 뿐만 아니라 내 지인, 내 가족들도 그렇게 말한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아무런 미사여구도, 큰 공감도 필요없이.
그저 "그랬구나, 오늘 힘들었겠다. 고생했어."라는 말 뿐이었는데.
다들 퇴사가 쉬워서 좋겠다. 다들 적성에 맞지 않으면 쉽게쉽게 퇴사하고 다른 일을 하는데 나만 당장 월세 걱정에 눈앞이 캄캄해져서 못하나보다.
사람들은 갈수록 제 손해는 조금도 보기 싫어하고, 그런 제 손해를 피하기 위해 나 하나쯤이야 괜찮겠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우리에게 신경질을 내고 화풀이를 하고 폭언을 하는데.
과연 우리에게 당신같은 사람이 하나뿐이었을까? 정말 우리가 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걸까?
너보다 구질구질하게 일하는 사람은 세상에 많다며, 돈 참 쉽게 벌려고 한다며 자기가 직접 겪어보지도 않은 남의 노동 처우를 함부로 깎아내리는 글을 남겼던 우리 매장 고객에게 딱 한 마디만 묻고 싶다.
그러는 당신은 얼마나 대단히 구질구질한 일을 하시는 분이기에 우리에게 배가 불렀다며 비난하는지.
전염병이 창궐한지 2년을 바라보고 있는 요즘 시기에. QR체크인이나 수기명부 작성을 요청했더니 내가 어리고, 여자라고 반말은 기본에, 마지막에는 꼭 한마디씩을 덧붙이더라.
"커피 한 잔 마시기 더럽게 힘드네."
그 한 마디를 입밖으로 뱉어내지 않으면 입이 간지러워 참을 수가 없는 모양이지..?
이제는 이런 거에도 기분이 상하는 걸 보면 내가 정말 정신병에라도 걸렸나보다.
그놈의 마스크 착용 안내.
누구는 자기를 구속하고 통제하려 한다며 불만글을 올리고, "그럼 쓰고 먹을까요?" 면전에서 비아냥거리고.
그런 와중에 누군가는 직원이 매장 관리를 안한다며 불만글을 올리고 구청에 신고를 한다.
우리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까.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아무도 서비스직 종사자인 나따위의 이야기에 관심 없겠지만 여기에 나와, 내가 오랜시간 몸담아 일했던 스타벅스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한다.
처음 여기 입사하고 몇년 간은 내 회사를 너무 사랑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좋았고, 그때만 해도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덜 예민했고, 무엇보다 전 대표님이 무섭지만 좋았다.
파트너는 스타벅스가 보호해야 할 제일 소중한 자산이라고, 고객도 인지할 수 있도록 포스앞에 팝업을 세우고 하이파이브를 하면 무료로 사이즈업을 해주는 이벤트는 솔직히 정말 감동이었다. 그때는 애사심 투철한 파트너였다.
그래서 좋았고, 노력해서 점장까지 올랐을때는 더욱 회사가 좋았다.
그런데 지난 몇 년동안 대표이사는 바뀌었고, 그분이 와서 초기에 한 일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고객 보기에 흉하다는 이유로 '파트너는 스타벅스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는 모든 게시물을 제거하라고 지시한 일이었다.
'어?'
그날부터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조금씩 티나지 않게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DT매장에 근무하는 파트너들이 심한 미세먼지 탓에 백날천날 괴로워해도 '서비스 제공자들이 무슨 마스크냐'며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회사는 DT노동처우에 대한 기사가 뜨자 그 당일에 바로 전 매장의 DT파트너에게 마스크를 돌렸다.
한때 떠들썩했던 울산 갑질 사건도 가만히 있다가 기사화되니 회사가 움직이는 '척' 했다.
오죽하면 파트너들 사이에서도 고발은 회사가 아닌 기자에게 해야 환경이 바뀐다는 인식이 아주 뿌리를 내렸을 정도일까.
내가 사랑했던 스타벅스는 애석하게도 이런 회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요즘 가장 힘든 점은 늘어난 매출 대비 턱없이 부족한 인원이었다.
외국 물 먹고 오신 어떤 분이 한국 현실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채 "한국의 스타벅스에는 수퍼바이저(매니저급)가 너무 많다." 라고 지껄인 탓에 회사는 대대적인 수퍼바이저 감축을 시행했고, 눈가리고 아웅식인 진급 전형은 주기적으로 열었지만 티오가 부족하다는 핑계로 매번 뽑지않았다.
뜻이 있었던 바리스타들은 7번, 8번, 10번. 기약없는 진급실패와 생활고에 지쳐 회사를 떠났고, 그 친구들이 떠난 빈자리를 1인 3역쯤 해가며 감당하던 기존 매니저 이상급은 점점 몸과 마음의 병을 얻어 회사를 떠났다.
매장에 일할 사람은 없는데 코로나때문에 회사가 힘들다며 채용을 못하게 막았다. 그래서 올해의 매출 상장액이 얼마라고요?
그러면서 모순적이게도, 신규 매장은 무섭도록 늘렸다.
신규 매장에 들어갈 인원? 물론 새로 충원하지 않고 기존 매장에서 빼앗아갔다. 당연히 각 매장에 일할 사람은 점점 더 없어졌다.
- 제 음료 왜이리 늦게 나와요?
- 매장이 너무 더러워요.
고객의 불만은 날로 심해지지만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
파트너들은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주문 들어온 음료를 만들어 나가는게 제 1순위 업무인데, 청소할 인원은 따로 없고, 고객은 쉴 틈 없이 들어오며, 기다려주지 않는다.
청결이 중요해야 할 식음료점에서 어느 순간 청결은 3순위, 5순위... 아, 일단 이것부터 하고. 어? 결국 못했네. 어쩔 수 없지. 내일은 하겠지.
점점 밀려난다.
스타벅스에 오래 다닌 고객 눈에도 보이지 않을까? 예전만하지 않은 서비스와, 예전만하지 않은 동시간대 근무 인원 수.
오늘 어떤 고객은 나한테 동네 구멍가게만도 못한 매장이라고 하던데,
오, 공감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고객님. 불만은 전부 가감없이 회사에 말해주세요. 저희가 아무리 힘들다고 말해도 회사는 저희를 쓰다버릴 소모품으로 여기거든요.
누가 소모품이 하는 말을 들어주겠어요? 어? 저기 빗자루가 말을 한다. 신기하네. 끝.
고된 노동에 지쳐 떠나는 사람은 혼자서 1~3인분을 해낼 수 있는 경력자들인데 그 빈자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으로 채워진다.
그런 와중 하루도 쉬지않고 이어지는 이벤트와, 매주 출시되는 쓸데없는 MD들.
오늘 리유저블 행사로 스타벅스가 그린워싱기업이다, 아가리환경보호기업이다 참 말들 많았지만 그걸 고객보다 더 싫어하는건 단언컨대 현장의 파트너들이다.
출시, 출시, 이벤트, 출시, 또 이벤트. 그걸 파트너들은 다 사전에 준비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어떻게든 다 해낸다.
'와. 이걸 해냈네.'
오늘 그 개의 새끼같은 행사도 어떻게든 끝낸 파트너들의 총평이 이렇다.
한국인의 악바리근성.... 내 일은 절대 남한테 미룰수없다.... 주어진 시간 안에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은 무료봉사를 해서라도 내 선에서 끝낸다..... 내 고생을 나의 동료에게 넘길 수는 없다.
그 집합체가 지금의 스타벅스라고 할 수 있겠다. 크고작은 무봉들이 모여서 각 매장들을 어떻게든 굴려가고 있는데, 회사에서는 말로만 무봉하지 말라고한다.
실질적인 대안은 아무것도 없고, 우리는 무봉하지 말라고 했다~~ 어~~? 하지말랬다? 분명 말했다?
- 제가 안 하면 할 사람이 없는데요?
- 그래도 시간 되면 다 던져놓고 퇴근해.
- 그럼.... 당장 내일부터 매장 운영은요?
도돌이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력자가 나가면 신입으로라도 채워졌는데, 요즘엔 그 신입 채용도 하늘의 별따기다. 스타벅스 지랄맞다는거 이미 소문 다 나서 지원자가 예전 반도 안된다.
그런데 회사는 무턱대고 일만 벌여놓고,
평소보다 매출 증가가 대폭 예상되오니 근무 인원을 충분히 배치 바랍니다. 우리는 경고했습니다. 끝.
- ??? 늘릴 사람이 없는데? 주변에 놀고있는 친구 있는사람?
- 제 친구를 이 지옥에 왜 끌고 들어와요. 절교 당할 일 있어요?
결국 오늘 전국 구석구석 보도된 그 사달을 낳았다.
대기음료 1nn잔.... 대기시간 기본 1시간 이상......... 아. 어느 매장은 650잔이었다고 하더라.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이런 얘기들을 장장 2시간동안 쓰며 구구절절 늘어놓는 이유는 고객에게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알아주기를, 무조건적인 이해를 구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냥,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말하며 드리는 음료에 같이 감사합니다 화답해주고, 감사합니다, 안녕히가세요 퇴점인사에 문을 밀고 나가다가 멈춰서 우리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고, 주문중에 이어폰을 끼고서 통화하거나, 우리 말을 알아듣지 못해 화만 내지 않아도.
우리는 그런 작고 사소한 행동에도 큰 감동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오늘 리유저블 사태를 견뎌낸 스타벅스의 모든 현장직 파트너들에게.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고객과 역대 최다 대기음료 잔수를 보고 울며 도망치고싶어도, 책임감 하나로 이악물고 참고 버텨준 이들에게.
지금은 온몸에 덕지덕지 파스를 붙이고 끙끙 앓느라, 너무 피곤한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도 오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지세우는 수많은 동료들에게.
우리는 그 누구 하나도 쉽게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
우리는 오늘 한국 스타벅스의 역사상 가장 위대했다.
- 이시간에도 잠못드는 어느 매장의 점장 올림.
사람이 사람에게 조금만 더 유하게 행동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기계가 아닌 사람이니까요.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5129
카테고리 없음
[펌] 어느 스타벅스 점주의 바람
반응형
반응형
댓글